Keep It Like a Secret에 대해

시시콜콜한 잡담

요즘 음악들은 왜 재미가 없을까? 근 몇년간 수 없이도 많이 했던 생각이다. 새로 발매되는 음반들을 들어도 결국엔 이 시기의 앨범들로 회귀해버린다. 여러가지 이유야 있겠지만 아티스트들의 태도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음악이 과하게 접근성이 생겨버렸기에. 뭐 아무튼 Keep It Like a Secret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이 시기 90년대의 인디씬은 철저히 미국 중심으로 흘러갔다. 그 중 태평양 북서부에 재능 있는 밴드들이 대거 출몰 했는데, 그들은 여유롭고 따스러운 하지만 어딘가 우울한 그런 무드를 풍기면서 등장했다. 두각을 나타낸 많은 인디 밴드 가운데 가장 명성을 떨쳤다고 할 수 있는 모디스트 마우스는 1집의 성공 이후 메이저 레이블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들의 라이벌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빌트 투 스필은 여전히 인디씬에 남아 활동을 이어갔다. 그들의 2집은 비평가들에게 찬사를 받아 워너브라더스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고 더그 마치에게 음악적인 자유를 쥐여줬다. 그러고 발매한 3집 Perfect from Now On 또한 엄청난 극찬과 함께 빌트 투 스필은 인디씬의 거인으로 우뚝 섰는데, 매우 다채로운 프로그래시브한 사운드와 그야말로 인디펜던트스러운 실험정신, 세세하게 짜여진 악기 연주는 대단하지만 왜 그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지를 확연하게 들려준다. 그 후 2년만에 나온 4집 Keep It Like a Secret은 어째서인지 전작의 하드했던 실험적인 요소는 어느정도 배제를 한 채 아름답고 멜랑콜리한 선율과 그 위에 여전히 풍부한 사운드로 무장을 했고 이는 어떤 강한 열망이 엿보였다. 전작의 한 곡 한 곡 길었던 대곡들보단 상대적으로 짧은 곡들이 주를 이뤘으며 사려깊음 대신 즉흥성이 강조된 본작은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많은 시도들 끝에 상업적으로도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으며 그들의 디스코그래피에 또 하나의 명반이 연작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오프닝 트랙 The Plan은 공연에서도 단골 오프닝 트랙으로 활용되는 더그 마치가 애정하는 곡으로, 기타와 드럼이 중독적으로 강조되는 트랙이다. 전작과 대비되는 꽤나 덜어낸 사운드를 처음부터 보여주며 본작의 방향성을 지시하는 적절한 선택이다. 또한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모호한 가사들의 의미와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트랙이기도 하다.
3번 트랙 Carry the Zero는 단연코 하이라이트 트랙이라 할 수 있는데 파워팝에서 느낄 수 있는 멜로디컬함과 이 시기의 태평양 북서부 노래들의 텍스쳐를 잘 담고 있다. 찬란한 기믹들로 장식된 이 곡의 후반부 아웃트로는 경탄스럽기 그지없다. 특히 “And you’ve become / What you thought was dumb / A fraction of the sum” 이 덤덤하고 간결하면서 노골적인 한마디는 큰 충격이였다.
6번 트랙 Time Trap은 간극이 상당히 인상적이였는데 인트로와 첫번째 벌스간의 간극, 프리코러스와 코러스 간의 간극, 마지막 코러스와 아웃트로의 간극. 매끄럽지만 기묘하게 삐끄덕대는 연결부위는 상당히 절묘하다.
9번 트랙 Temporarily Blind에선 더그 마치의 천재성을 단번에 알 수 있는 트랙으로 특히 코러스 후에 나오는 인터루드와 후반부에 변하는 사운드는 감탄의 연속이다.
10번 트랙 Broken Chairs는 본작의 마지막 트랙이지만 전작과 유사한 느낌이 든다. 죽은 자신의 시인 친구를 기리며 그의 시를 인용한 시적인 가사와 혼란스러운 텍스쳐의 사운드는 앨범 내내 밝았던 분위기를 환기 시켜준다. 아웃트로 기악부분에선 엇박으로 불편한 느낌까지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곡들과는 상반되게 마무리한다. 이건 한없이 밝게만은 끝내지 않겠다는 더그 마치의 특유의 장난스런 배치가 아니였을까?
더그 마치는 밴드의 멤버를 꽤 교체해왔다. 이는 2집과 3집, 4집에서 흐르는 기풍이 상당부분 다르게 된 이유일 것이며 마치는 각각의 작업물들에서 무엇을 원했는지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본작은 대중들에게 한걸음 다가서기 위함이 어쩌면 살짝은 노골적으로 느껴졌는데 이는 기분 나쁜 결과물의 탄생이 아닌 밴드가 가지는 딜레마인 실험성과 대중성을 전작과 본작을 통해 완벽히 발산했고 정신적으로 지친 마치와 2집 때와는 바뀐 밴드 멤버들, 3집을 완성하면서 엄청나게 발전한 프로덕션 능력과 창의성, 완성형인 3집보단 2집을 길잡이로 설정한 그런 시도들이 결국에는 가장 더그 마치스러운 결과물로 출력됐다. 그래서 결론은 Keep It Like a Secret은 대중성과 실험성이 가장 적절하게 겸비 된 앨범이라는거고 이게 내가 결국은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이유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