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anted & Enchanted에 대해

시시콜콜한 잡담

Slanted & Enchanted

오랜만에 Slanted and Enchanted를 들었는데 뭐랄까 꽤나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불편한 음악이지만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늘어지는 기분이 든다.
이상한 곡 구조와 저급한 음질, 비상식적인 멜로디라인은 언뜻보면 지금 막 기타의 주법을 완독한 애들 장난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꽤나 계산적이기도 하다. 정말 개러지(차고)에서 만들어진 이 앨범은 작곡법을 1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크머스 본인이 직접 밝혔었다.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천부적인 감각에 의존하여 탄생한 Slanted and Enchanted는 자유분방하게 전개되는 곡들의 구조와 어딘가 모호하기만 한 요소들이 결합되서 비평가들을 열광시켰다. 프랭크 자파나 페어우부의 그것과 같이 치밀한 폴리리듬과 비정형화된 음악은 여지껏 없던 건 아니지만 그것과는 다른 원초적인 신선함이라는 미학을 비평가들에게 각인 시켜준 그런 상징적인 앨범이라는 의의도 있다.
첫번째 트랙 Summer Bebe (Winter Version)는 등장부터 아주 충격적이게 그지 없는데, 이 말도 안되는 곡의 구조는 참으로 신비하다. 뜬금없이 나오는 기타 솔로는 헛웃음이 나올만큼 어이가 없는 히어로 랜딩이고 이는 80년대 정형화된 메탈의 기타 솔로에 절여져 있던 이들을 쇼킹하게 만들었을 거다. 거기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의 선정과 루 리드와 밥 딜런에게서 영향을 받은 듯한 무미건조하고 대충 부르는 보컬까지 더해져, 첫등장이 얼마나 충격적이였을지 가늠조차 안된다.
2번째 트랙 Trigger Cut/Wounded-Kite At :17은 어떻게 보면 첫번째 트랙보다도 더 웃긴 트랙인데 말크머스 특유의 삐딱함이 엿보인다. 두가지 트랙이 섞여있는 이 트랙은 굳이 왜 합쳐서 2번트랙으로 내세웠을까? 너무나도 다른 두가지의 트렉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것부터가 아이러니한데 그것보다도 더 충격적인 건 뒤의 트랙은 인트로인지 아웃트로인지 암튼 그것만 흘러나온다는거다!
4번째 트랙 In the Month a Desert는 노이즈가 가득한 배경에 노곤함을 한껏 더한 본작에서 Summer Babe와 함께 가장 애정하는 트랙인데 무언가 표출하고픈 목소리와 노이즈는 인디밴드에게서 느낄 수 있는 어떤 가장 이상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언제나 밴드의 1집 혹은 셀프타이틀에서 느껴볼 수 있는 감정인데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긴하다.
6번째 트랙 Zürich Is Stained는 마스터링 하나 안되서 들쭉날쭉한 볼륨이 오히려 잘어울리는데, 배킹 사운드의 스트링 소리는 정말 요염하다고나 할까.
9번째 트랙 Here은 가장 정갈되고 서정적인 트랙인데, 이들이 후일 보여줄 4집의 맛보기 트랙 같은 느낌도 든다. 이 곡은 본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이 한껏 묻어나니 오히려 더욱 유머러스하다.
유머러스와 삐딱함을 겸비한 이 앨범은 이상적인 밴드의 첫 페이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에게 느껴지는 에너지는 정말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는 듯 보였으며 단지 그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멜로디와 신선함이라는 칼날마저 숨기고 있는 걸작이다. 본작을 들으며 그들의 마지막 페이지를 상기해보면 페이브먼트라는 밴드의 서사는 참으로 기이하지만 유쾌한, 눈물 나는 순박함마저 간직하고 있는 그런 첫 단추이자 보석이다.